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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2012. 3. 8. 21:30
1.
 끝단이 바작거리며 조금씩 타들어가는 겉옷 소매에서는 희미하게 유황냄새가 풍겼다. 천사가 지옥에서부터 안아들고 끌어올린 남자의 몸은 아이가 가지고 놀다 싫증나 던져버린 헝겊인형처럼 형편없이 늘어져 있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부드럽게 들썩이는 천사의 움직임에 따라 그 품에 안긴 남자의 팔과 다리도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느리게 덜렁거렸고, 역시나 축 늘어져 천사의 팔뚝에 기댄 머리도 약간씩 흔들렸다.
 2.
 원래도 희었겠지만 더욱 창백하게 가라앉은 남자의 얼굴에서는 유황과 재가 섞인 땀이 천사의 발걸음에 맞춰 조금씩 흘러내리다 스미듯 머릿속과 목덜미로 사라졌다. 끊임없이 배어나와 흐르는 땀이 아니었다면 남자는 시체라고 해도 반박할 말이 없을만큼 조용했다.   
3.
 온갖 괴악한 문양으로 뒤덮인 문을 넘은 천사가 잠시 멈춰서서 어두운 집 안을 살폈다. 처음 그가 남자를 찾으러 떠났을 때처럼 집은 삭막하고, 어둡고 황량한 공기와 약간 두텁다 싶게 쌓인 먼지 그리고 코를 찌르는 카랑한 담배쩐내로 젖어있었다. 구석에는 남자가 연옥에 떨어지기 전 '다시는 누울 일도 시트를 갈 일도 없을테니'라고 말하며 새로 간 침대시트도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그대로였다. 천사는 알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며 발을 옮겼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이 닿지 않았던 바닥은 두 사람의 무게에 비명을 질렀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눕혔을 때보다도 더 경건하고 정중한 몸짓으로 천사가 남자를 침대 위에 바르게 누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 일색의 남자가 눕자, 침대 위가 마치 새까맣게 타들어 눌어붙은 것 같은 기묘한 착각이 들었다. 천사가 조용히 남자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남자는 말이 없었다.
  
천사는 느리고 확실한 손길로 집안 구석을 쓸고, 아무 것도 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훑었다. 여전히 한 통 가득 차 줄줄이 벽에 붙은 물통과, (보지 않아도 뻔히 보이는) 찬장의 술병들, 잡다하고 기기묘묘한 이국의 기념품들. 수영을 하는 어린아이가 천천히 손과 발부터 물에 적시듯 천사는 남자가 있는 곳에서 가장 먼 곳부터 훑었다. 집 안을 한바퀴 돌아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온 천사가 서랍을 열었다. 텅 빈 서랍에 거짓말처럼 구겨진 담배갑이 나뒹굴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자 약간 찌그러진 담배 여섯개비가 남아있었다. 마치 동양 어딘가의 승려들이 침향을 태워 신을 부르듯, 담배를 모두 챙긴 천사가 서두르지 않는 동작으로 불을 붙였다. 하나, 둘, 천천히 여섯개 째의 담배개비에 불을 붙인 천사가 축음기 옆의 재떨이에 그 희한한 향香을 둥글게 얹었다. 
목요일, 이른 오후의 거리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굳게 맞물린 블라인드 사이로 간간히 흘러들어오는 먼 경적 소리, 이른 더위에 늘어진 아이스크림 차의 광고, 서로 먼저 지나가려는 택시 기사들의 소소한 언쟁. 천사는 잠깐 블라인드를 올릴까 하는 생각으로 손잡이에 손을 얹었지만, 자신이 빚고 있는 경건한 공간에 외부의 햇빛이나 소리를 들이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손을 내리고 축음기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아까까지 없었던 판이 들려있었다.  
천사의 귀에 불경스러울 정도로 들리는 때묻은 바깥의 소리를 지우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LP판이었다. 언젠가 남자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던 반질반질한 판을 축음기 위에 얹은 천사가 바늘을 얹기 전 침대를 잠시 돌아보았다. 천사는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자신이 돌보는 형제 그 이상의 소중한 무언가가 이 남자에게 있었던가? 남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자신에게 물어봤자 돌아오는 것은 거대한 물음표 뿐이었다. 천사는 궁금했다. 그래서 남자를 깨우기로 마음 먹었다. 판이 돌아간다. 바늘을 조심스럽게 얹는다. 축음기가 투박하게 긁히는 목소리로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백일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흐느적거리는 연주로 남자를 깨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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